충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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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명 : 예안이씨 충효당 (禮安李氏 忠孝堂)
  • 지 정 별 : 보물 553호 (지정 1971년 08월 30일)
  • 분 류 : 고가
  •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1리 189
  • 소 유 자 : 이준교
  • 시 대 : 조선시대 초기 (1551년, 명종 6년)
  • 건축면적 : 135.67㎡ (41.04평), 33.72㎡(10.20평)

    얼음 언 연못. 산을 뒤에 둘렀으나(배산) 흐르는 물이 없어 연못을 파고 물을 거두어들인 것(임수)은 아닐까. 이 집에서 만고에 우뚝한 충신과 효자가 났고 그 후손들은 올곧은 행동과 부드러운 마음가짐을 덕목으로 삼으며 수백 년을 이어오고 있다.
    충과 효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

      예안이씨 충효당(忠孝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충효당파의 파조이신 충신의장(忠信義將) 풍은(豊隱) 홍인(洪仁) 공의 충(忠)과 그 9세손인 효자(孝子) 용눌재(慵訥齋) 한오(漢伍) 공의 효(孝)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예안 이씨가 처음 풍산에 내려온 시기는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해 안동파 시조인 필간(弼幹) 공의 자제분 3형제가 풍산으로 처음 남하했던 때다.
      장자인 영(英) 공의 후손이 살아왔던 곳이 사직공파 구택이고, 차남인 전(荃) 공의 후손이 살던 곳이 현재 곡강정이 있는 터이며, 셋째인 훈(薰) 공의 후손은 상리 종택에 살고 있다. 그리고 차남 전 공의 둘째인 홍인(洪仁) 공께서 충효당의 파조가 되며 큰댁에서 출가하시면서 처음 충효당 건물이 지어졌다(명종 6년, 1551).
      풍은 공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지금의 경북 안동의 풍천 구담(九潭)에서 왜적과 싸워 많은 전공을 올리고 순국하셨으며, 순조 11년(1811년)에 충신 정려를 받으셨다.
      풍은 공의 후손인 용눌재 공은 순조 12년(1812년)에 효자 정려를 받으면서 이 두 분의 충과 효의 뜻을 기리기 위해 쌍수당(雙修堂)을 건립했다.

     산 중턱에 자리잡고 남녀의 공간구분 분명해

      예안 이씨 충효당은 기름진 풍산 평야, 풍산읍, 상리천의 넓은 전망이 한 눈에 펼쳐지는 나지막한 야산과 바위를 뒤로 하고 있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배산임수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느라고 건물 좌향이 서향을 하고 있는 드문 예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으로써 남녀의 공간 구분이 분명한 것도 이 집의 특징 중의 하나다.
      건물 서북쪽으로는 연못이 있고 겨울철 바람을 막기 위한 나무를 심었다.

    ㅁ자형의 소박한 본채와 연못을 앞에 둔 별당

      예안 이씨 충효당은 본채와 별당인 쌍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경상도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ㅁ자 형의 평면구조이다.
      지붕은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며 맞배지붕(건물의 측면에서도 지붕의 용마루까지 올라가게 되어 측면에 삼각형의 벽이 생기는 지붕)이 서로 만나 가적지붕(본채의 큰 지붕 옆쪽에 붙어있는 작은 지붕. 눈썹지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소박한 민가 성격이 두드러지고, 다른 종택에 비해 밖으로 통하는 문과 창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별당인 쌍수당은 막돌로 기단을 쌓고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돌계단을 통해 누상부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고 온돌방과 누마루가 있는 정자형식이다.

  • 760-803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189번지 예안이씨 충효당 (054) 858-4768, 070-8880-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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