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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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의 이성 성주로 고려 개국 공신

  예안(禮安=일명 선성 宣城) 이씨는 원래 전의(全義) 이씨에서 갈려 나온 성씨다. 고려통합삼한개국 익찬이등공신 삼중대광태사전산후 시 성절공(高麗統合三韓開國 翊贊二等功臣 三重大匡太師全山候 諡 聖節公)이시며 휘(諱)가 초명(初名)은 치(齒)이시고 사명(賜名)은 도(棹)이신 분이 전의 이씨의 시조이시다. 이로부터 10세의 익(翊) 공에서 예안(禮安)으로 이적하게 된다.

장독대 자리.  양지 바른 뒤꼍의 산비탈은 일 년 내내 기온의 변화가 가장 적은 곳이다. 바로 이곳에 장독대를 놓았다.
  시조 태사공은 9세기 말 경(890년경) 웅진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서 금강 유역의 해상 세력과 힘을 합하여 그 일대에서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면서 후삼국이 분립될 때에는 군사 요충지 전의 이성의 성주로서 힘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태사공은 고려 태조가 고려를 건국하고 지방 호족에게 보낸 친화의 사절에 응하여, 왕건의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휘하에 들어간 무장이다.
  그 뒤 금강 유역을 점령하는 등 고려 영토 확장에 공을 세웠다.
  특히 태조 17년(934) 후백제를 총 공략하는 남쪽 정벌에 나서서 금강에 이르렀을 때 때마침 많은 비가 내려 금강이 넘치는 큰 홍수가 나서 진군이 어렵게 되었다. 이 때 태사공께서 잘 훈련시킨 수군으로 무사하게 강을 건너게 해 운주(지금의 홍성) 싸움에서 후백제군을 대파했다. 이 전투에서 후백제에 큰 타격을 주고, 공주 이북의 30여 성을 빼앗아 고려의 영토를 충청도까지 넓혔다.
  이듬해에는 후백제 내부에서 부자간의 불화가 생겨 견훤은 그의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 이 내분을 틈타 태조가 대군을 이끌고 신검을 선산에서 대파하여 그의 항복을 받는 작전에 진력 공헌하고 후삼국의 통일을 보게 되는 군사 작전에 결정적인 큰 공훈을 세웠다(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태사공께 도(棹)라는 이름(李棹)을 내리고, 전의 호족 성주 응양 대장군에게 고려개국통합삼한 익찬공신 2등에 녹봉했다. 또한 최고 관직인 정1품 삼중대광태사 벼슬을 내리고, 전의 1천호의 식읍을 삼게 하고 전산후를 봉작했다.(전의예안이씨화수회, "전의 예안이씨 천년사", 기창족보사, 1999.6)

  9대 10세에 이르러 예안으로 이적

  전의 이씨의 시조에서 시작하여 9세의 언승(彦昇) 공의 아들 익(翊) 공은 예안백(禮安伯)으로 봉작되셨는데 이 후에 예안 이씨의 시조가 되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고려 말의 어지러운 시대에 문헌들이 유실되어 전의(全義)에서 예안(禮安)으로 본관을 이적한 사유에 관한 기록은 찾을 길이 없다.
  전의 14세 신(愼) 공은 문과 급제하여 좌찬성에 올랐으며 5형제를 두셨다.
  장남 효간(孝幹) 공은 함창 풍기파(咸昌 豊基派), 차남 의간(義幹) 공은 김포 통진파(金浦 通津派)로, 3남 보간(輔幹) 공께서는 전의 동고파(全義 東皐派), 4남 필간(弼幹) 공은 안동파(安東派)로, 5남 석간(碩幹) 공은 홍주파(洪州派)로 분파되어 각 지역별로 세거하게 되었다.(예안이씨 충효당 종중, "충효당 종택 약지", 2000년 12월, 11~15페이지)  

760-803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189번지 예안이씨 충효당 (054) 858-4768, 070-8880-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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