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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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벌한 한양 떠나 남쪽 안동으로

  안동파조(安東派祖) 사직공(司直公) 필간(弼幹) 공께서는 원래 한양 동소문 밖 소용동에서 사시며 네 분의 아들을 두셨다.
  맏 아들은 생진공(生進公) 영(英)이시고 둘째 아들은 참봉공(參奉公) 전(荃)이시다. 셋째 아들은 생원공(生圓公) 훈(薰)이시며 넷째 아들은 감찰공(監察公) 영(苓)이시다.
  생진공, 참봉공, 생원공 삼형제분께서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당시의 도학자이며 명유(名儒)인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선생 등과 교의(交誼)가 매우 두터웠다.
  그러나 당파싸움으로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정암을 비롯한 현유석학(賢儒碩學)들이 화를 입는 참상을 보시자 벼슬에 대한 뜻을 버리고 진외조부(陳外祖父)인 안동찰방(安東察訪) 조안도(趙安道)의 별서(요즘의 별장)가 있던 안동부 풍산현 하리(우렁골)로 내려오셨다.
  이 때 참봉공께서 읊으신 시에 남쪽으로 내려 오신 뜻이 잘 드러나 있다.

     어두운 밤 날뛰는 것이 세상 풍속이 되었으니(踉螃昏夜己成風)
     무슨 일로 한양성에 이 몸을 붙여두리(何事寄身大별中)-별=山+別
     뜬세상 부귀공명 즐길 바 아니며(浮世功名非所樂)
     남쪽으로 내려가 약초 캐는 것만 같지 못하리(莫如南下採香藭)

  삼형제분 중 백파(伯派)와 중파(仲派)는 하리(下里)에, 계파(季派)는 상리(上里)에 터를 잡았다.
  안동파는 안동으로 내려온지 4백50여년을 살아오면서 부귀공명을 멀리하고 오직 학문과 덕행을 가도(家道)로 삼았으며, 세 분은 학문과 덕행이 있는 선비로 조서(詔書)의 부름을 받고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지조 있는 선비로 일생을 보내셨다.
  후손 중에서 사마시(司馬試 : 생원과 진사를 뽑는 과거)에 급제하신 분이 38명이나 되었다.
  이는 남쪽으로 내려오신 선조의 뜻을 받들어 벼슬보다는 덕행을 소중히 여기는 가풍을 꾸준히 지켜 온 까닭이다.

760-803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189번지 예안이씨 충효당 (054) 858-4768, 070-8880-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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